박세윤 SEYUN PARK

넘어지기:
넘어지기에 대한 대화




2022년 3월 23일, 놀이를 탐구하고 기획하는 그룹 놀사람의 다움, 하륜, 비누 3인을 만났다. 놀사람은 몸놀이/글놀이 등의 놀이 문화를 주로 워크숍 형식으로 실험하고 연구한다. 멤버 개개인은 즉흥춤, 파쿠르와 같이 신체를 매개로 하는 몸활동, 이른바 움직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했다. 그런만큼 “‘넘어지기’라는 키워드로 함께 퍼포먼스를 기획해보는 것은 어떨지” 요청했고, 그에 응한 놀사람과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한시간 가량의 대화 기록이다.

다움: 처음에 1, 2, 3, 4번을 봤을 때는 저의 맥락이겠지만, 너무 공감이 됐다고 해야하나. 그런 부분이 있었어가지고. 저는 계단 내려가는 것도 너무 무서워했었거든요? 그거에 대한 방법을 찾고 그랬었어요. 어떻게 하면 안무섭게 내려갈 것인가. 내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는데 사실 눈은 위에 달려있잖아요. 근데 계단을 내려가면 수직낙하할 것 같은. 종이가 ‘넘어지기’에 대한 텍스트를 제시한다 했을 때, 우리가 각자 움직이는 퍼포먼스가 생각이 나서 잠시 상상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륜: 그냥 궁금한건데요. 종이는 넘어질까봐 걱정하는 감정대로 넘어진 적이 있었나요?
종이: 오 네 초등학교 때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 다니던 학교가 언덕 위에 있었거든요? 엄청 가파른 언덕. 그래서 항상 올라가면서도, 내려가면서도 아 여기서 다리에 힘 조금이라도 풀고 헛딛으면 바로 자빠질 것 같다. 근데 그 걱정대로 딱 자빠진 적 있어요. 그 순간에 아픈 것보다 뭔가 엄청 창피했거든요? 기억에 남는건 주위 사람들이 엄청 쳐다보던거. 또 같이 학교다니던 또래애들 시선. 그래서 왠지 담담하게 일어나야 될 것 같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막 일어서서 안경 날라간거 주워쓰고 집에 간 기억이 나요. 안아픈 척.

하륜: 김하온1의 <붕붕>에 “떨어져도 밑에는 바다 아니면 쿠션.” 이런 가사가 있거든요. 저도 실패하는걸 두려워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실제로 ‘떨어지는’걸, 받아들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러고나니까, 떠오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 넘어져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경험. 우리가 옛날에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책 읽었을때, 떨어지기 직전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그거2 있었잖아요. "자빠진 이후에는?" 이 문장에서 그 뒤가 어떨지에 대한 궁금함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다움: 누가 봐도 넘어지는 것 같았는데 넘어진 다음의 동작이 계속 이어지는 그런게 떠오르네요. 넘어진다. 넘어진다...

비누: 뭔가 넘어짐의 뒤에 어떻게 대응하게 되는지 다양한 상황? 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걸 저는 이 텍스트에서 힌트를 얻어서. 넘어지기에서 파생된 텍스트를 수행해보는건 어떨까. “퍽, 쾅, 쿵, 탁”같은 텍스트. 넘어지기만 하는 그 모습만 여러개를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보다는. 사실 종이가 그냥 재미있게 하고싶다고 하긴 해서. 그 의견을 따르고 싶긴 하지만... 저는 놀사람 활동이 의미를 많이 찾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뭔가. 넘어지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건 너무 단편적인 것 같고. 넘어지고 난 다음의 감정들이나 감각들에 대한 생각. 여지를 줄 수 있는 퍼포먼스로 구성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입니다.

다움: 놀사람은 기존의 활동 이후에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 놀이활동 자체에서 의미를 얻는. 그것을 계속 시행해보는.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끼는거죠. 저는 저 자체로 의미부여하는걸 너무 좋아해가지고. 저 궁금한게, 종이가 말한 넘어지기에서 ‘넘어지기’가 넘어질 것 같아서 두려운 1단계 상황인건지, 넘어지는 순간의 2단계인건지, 혹은 넘어지고 난 후의 3단계 등의 상황인건지... 제가 느껴진 것에서는 저 글이 넘어지기 전의 상태를 많이 표현한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비누: 넘어지는 순간의 이미지만 먼저 떠올랐는데, 그 전의 조마조마하고 위태로운 것에 초점을 둔 장면도 있으면 좋겠다.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다움: 저는 몸 움직임 활동하면서 많이 느꼈던 게, 내가 넘어지는 이유가 무게이동에 대해서 저항할 때 넘어진다? 예를 들어 어디로 향하고 있을 때 그거에 자연스레 몸을 실으면 안 넘어지거든요, 근데 그거에 저항하면 몸이 부자연스러워지면서 넘어지는 순간이 생기더라고요. 만약 계단을 내려갈때나, 넘어지는게 두려운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준다면... 너의 몸이 굳어있기 때문에 사실은 더 위험해지는 거라는 말을 하고싶어요. 저는 진짜 실제적으로 그걸 깨달아서, 골반을 움직이면서 걸으려고 해요. 딱딱하게 굳다보니 더 위험한데, 그걸 의식적으로 푸니까 괜찮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런 경험이 있었죠. 사실 그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발이 바닥에 붙어있는데, 넘어진다는건 머리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거 아닌가? 제가 파쿠르3를 했었어요. 파쿠르는 높은데에서 뛰어내려야 하거든요? 근데 발과 머리가 다 제 몸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 발과 착지해야 하는 땅바닥에의 길이가 별로 안돼요. 근데 저는 제 눈으로 그걸 보잖아요. 그럼 나는 그 몸의 길이까지 합해서 이걸 보는거에요. 그래서 겁나 무섭고. 그렇다. 근데 넘어지는 건 위로 지키고 싶어했던 눈의 시야가 무너지는, 어떻게 상징적으로 보면 내가 통제하려 했던게 무너지는...

비누: 저는 두려워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보니. 차라리 넘어질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그냥 넘어져봐!라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그게 종이와 좀 더 잘맞는것 같다는 생각. 신체적 경험이 비슷하다? 신체감각적인 경험이 종이와 다움이 비슷하다고 생각.
다움: 오히려 좋다! 넘어지는 걱정을 안한 사람이 있어서.
종이: 맞아요.
하륜: 저도 굳이 따지자면 걱정하는 쪽이었어가지고. 저는 넘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자신의 몸과 환경에 대한 불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사실 뛰면 뛰어지는데, 그게 안될거라는 마음이 이상하게 있어서 못하게 되는. 근데 어쩔때는 그냥 눈감고 뛰니까 되긴 되더라고요.
비누: 놀이기구와 비슷한. 바이킹처럼.
하륜: 저 놀이기구 진짜 못타요.

다움: 하륜이 말한 그게 자꾸 생각나요. 딱딱하게 굳어진 영상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하륜: 음... 넘어지는 환경을 다르게 해서 여러가지를 보여주는 것도 생각이 나요. 트램펄린이라던지. 넘어졌는데 영상을 꺼꾸로 돌렸는데 벽이었다던지.. 그런거.

다움: 그리고 넘어지기를 한단계 넓게 보면 ‘균형잃기’와도 비슷할 것 같아요. 넘어지기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 있는데, 넘어지기 > 균형잃기 로 생각해보면... 재미있어 보일 수도 있겠다.
하륜: 연극을 학교에서 준비했던 적이 있는데, 지도해주신 선생님께서 모든 이야기는 균형을 잃은 주인공이 균형을 되찾기 위해 가는 여정이다. 라는 말을 했었어요. 넘어지는 것도 어떤 이야기로서도 의미부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움: 으음.... 재미있겠는데.
하륜: 음미를 하시네요.

다움: 넘어지는 장면을 다 수집해서, 소리를 다르게 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고. 루프를 만들어서 개인마다 다른 걸 가지고 있어서, 그걸 계속 반복하기만 해도 아름답겠다. 넘어지기 에서 다른 동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건 반동을 이용하기. 넘어지기는 '넘어지기'까지만...일 수도 있겠다. 오. 넘어지기 라는 행위가 '넘어지는 결과'가 없다면 넘어지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바닥이 없으면?
비누: 그건 결과가 없는거라고 할 수 있는거 아닌가?
종이: 제가 그래서 “바닥이 없다면?”을 키워드로 적었던 게, 넘어진다는 건 바닥이 있어야만 한다. 몸이 부딪히는 바닥이 없다면 그냥 영원히 떨어지는 상태로... 무한루프. 무한궤도에 갇히는 것처럼 영원한 상태가 되는 것. 낙하.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다움: 바닥이 종이한테 안정적인 존재인가? 위협적인 존재인가?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왜냐면 저는 바닥이 없는게 더 무섭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근데 넘어지기 전에 하는 생각은 바닥이 있어서잖아요. 부딪힐까봐.
하륜: 그런데 땅에 붙어있는게 사실 안정감의 원초적인 환경이잖아요? 중력이라는 것도 그렇고.
비누: 그럼 우리가 두려워하는건 사실 우리를 도와주는... 최승자, 떨어지는 시4 있는거 아세요? 제목은 기억이 안나는데. 시 내용이... 어떤 여자가 계속 떨어지는데, 마지막에 아 썅 언제 떨어져!!! 라고. 하고 끝나는.
종이: 넘 재미있는데요.



최승자,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1981년.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아 썅! (왜 안 떨어지지?)



하륜: 그런데 땅에 붙어있는게 사실 안정감의 원초적인 환경이잖아요? 중력이라는 것도 그렇고.
비누: 그럼 우리가 두려워하는건 사실 우리를 도와주는...
하륜: 갑자기 생각난건데, 구멍을 바닥에 진짜 뚫고. 번지점프도 가장 어려운건 마음 먹는 순간이잖아요? 구멍 근처를 맴도는 사람은 엄청 불안해하는데, 뛰어내린 사람은 막상 떨어지면서 차도 마시고 뭐도 하고...
비누: 그냥 우주인 아니야? (웃음)


다움: 저 사담인데 제가 소설수업 들었을때 넘어지기에 대한 소설 쓴 적 있었거든요? 진짜 별로였는데... 길에 작은 흠이 있는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지나가다 한번씩 꼭 넘어질락 말락하는. 그걸 하루종일 앉아서 관찰하는 사람에 대한 글이었거든요. 근데 쓰니까 진짜 별로더라고. 다른 사람이 보면 이게 대체 어떤 의도로 쓴지 모르는. 사실 저는 구멍이라는 존재보단 바닥이 더 재미있어요.
비누: 그럼 넘어지는 것보다 맨홀에 빠지는게 더 공포스러운건가요.
하륜: 그렇죠 실제로 그렇게 죽기도 하니까요.
비누: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것 같아요. 신체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 바닥에 맞출 것이냐 그 과정에 맞출 것이냐...등등.
다움: 그래서 그걸 진짜. 진짜 눈으로 보기에 사소한 동작들을 오히려 큰 넘어지는 갑작스러운 소리들에 조합해서 어떻게 표현해볼 수 있다면 그것도 재미있겠다.


1) 대한민국의 래퍼.
2) 바스 얀 아더르, <낙하2 Fall2>(1970).
3) 안전장치 없이 주위 지형이나 건물, 사물 등을 이용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움직임 활동이다. 이를 익스트림 스포츠의 일환으로 보기도 하나, 참여자들은 파쿠르를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닌 정신적, 육체적 훈련으로 설명하기를 강조하고 있다.